과학, 미생물
미생물
면역계는 감염 초기에 작용하는 선천 면역(innate immunity)과 감염 후기에 반응하는 후천/ 획득 면역(adaptive/ acquired immunity)으로 나뉜다. 선천 면역은 1차 방어 수단으로 감염 초기에 작용하기 때문에 항상 활성화되어 있거나, 즉각적으로 활성화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한다.
선천 면역에 관여하는 대표적인 세포들로는 대식세포(macrophage), 자연 살생 세포(natural killer cell, NK cell), 수지상 세포(dendritic cell) 등이 있으며, 이 세포들은 표면에 위치한 패터인식수용체(pattern recognition receptor, PRR)를 통해 지질다당류(lipopolysaccharide, LPS)와 같은 병원균 특이적인 물질들을 인식함으로써 활성화된다.
반면, 후천 면역은 2차 방어로 작용하는 시스템으로 선천 면역이 감염 물질을 처리하지 못하는 경우에 작동하여 이물질들을 제거한다. 척추동물들의 경우에는 선천 면역과 후천 면역이 서로 상호작용함으로써 비자기(non-self) 물질들을 인식하여, 이물질들을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동시에 자가 물질들이 최소한의 손상을 입도록 한다.
이와 같은 균형적인 면역계로 인해 숙주와 미생물총은 공존하면서 서로의 생존에 이익을 제공하는 관계를 형성한다. 예를 들어, 위장관(gastrointestinal tract)에 서식하는 알칼리게네스(Alcaligenes)와 림프 조직(lymphoid tissue)에 서식하는 박테리아들은 인터루킨-10(interleukin-10, IL-10)의 분비를 자극함으로써 숙주 세포의 염증 반응을 억제하는 동시에 박테리아의 군집화(colonization)를 안정화 시킨다.
하지만, 특정 작용 또는 현상으로 인해 미생물총의 불균형이 발생하게 되면, 숙주와 미생물총 사이에 비정상적인 상호작용 일어나며, 그 결과 면역 항상성이 무너져 자가면역(autoimmunity), 알레르기(allergy), 만성 염증성 질환(chronic inflammatory disease) 등의 면역 매개성 질환들이 발생한다.
숙주와 미생물총 간의 상호작용에 악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요소로는 항생제와 위생 시설이 있다. 1928년 영국 미생물학자인 알렉산더 플레밍(Alexander Fleming)이 페니실린(penicillin)을 처음 발견한 이래로 인류의 평균 수명이 증가하였지만, 항생제의 남용으로 인해 숙주와 미생물총 사이의 상호작용이 무너졌으며, 이러한 결과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증가한 면역 매개성 질환 발생률과 상관관계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장내 미생물총에 의한 과도한 면역 반응을 피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장벽을 튼튼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건강한 장은 상피세포(epithelial cell)와 점막층(mucosal barrier)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다양한 화학 물질들(예: 분비형 면역글로불린 A, 항균 펩티드 등)의 보호를 받고 있다.
장내 미생물총 또한 다양한 방법을 통해 숙주의 장벽 온전성(integrity)에 기여하는데 이들은 톨-유사 수용체(Toll-like receptor, TLR), NOD-유사 수용체(nucleotide-binding oligomerization domain-like receptor, NLR) 등 면역 반응에 관여하는 수용체들을 활성화시켜 장벽 항상성 유지와 림프 조직(gut-associated lymphoid tissue, GALT)의 발달에 영향을 주며, 상피세포를 자극하여 혈청 아밀로이드 A(serum amyloid A)를 생산함으로써, 장내 도움 T17 세포(helper T 17 cell)의 후천성 면역 반달에 기여한다.
그 외에도 식이섬유 물질이 풍부한 음식물의 섭취로 인하여 장내 미생물들에 의해 생산되는 짧은 사슬 지방산(short chain fatty acids, SCFAs)은 Tregs의 생산을 촉진하여 항염증성(anti-inflammatory)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장벽 항상성을 유지한다. 따라서, 장내 미생물총의 불균형은 과도한 면역 세포 반응을 일으켜 염증성 장 질환(inflammatory bowel disease, IBD)과 같은 장 특이적 면역 매개성 질환을 야기한다.
장내 미생물총에 의한 면역 반응은 장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장내 미생물총이 장과 관련된 기관들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이미 여러 연구들을 통해 입증되었다. 기관형성(organogenesis) 과정에서 위장관과 마찬가지로 내배엽(endoderm)에서 발생하는 췌장(pancreas)은 비교적 위장관과 인접하여 위치해 있기 때문에, 장내 미생물총이 쉽게 이동할 수 있는 기관이다.
특정 기관에 서식하던 미생물총이 다른 기관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전위(translocation)”라고 하는데, 이와 같이 미생물총이 기존에 서식하던 기관에서 다른 기관으로 전위하게 되면, 과도한 면역 반응이 유도되어 면역 매개성 질환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 장내 미생물총의 전위가 췌장에서 발생하는 경우, 이 기관에서 면역 세포들이 과도하게 활성화되어, 자가면역에 의한 제1형 당뇨병(type 1 diabetes, T1D) 또는 췌장염(pancreatitis)이 일어날 수 있다.
간(liver) 또한 내배엽에서 발생하는 기관들 중 하나로 장내 미생물총의 전위로 인해 과도한 면역 반응이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장내 미생물 중 하나인 엔테로코커스 갈리나럼(Enterococcus gallinarum)은 소장(small intestine)에서 장간막림프절(mesenteric lymph node, MLN), 간, 비장(spleen) 등의 기관으로 전위하여 조직 자가면역(systemic autoimmunity)을 일으킨다.
또 다른 예로 클렙시엘라 뉴모니아(Klebsiella pneumonia)는 장벽을 손상시켜 간으로 이동하여 다른 기회병원성 공생미생물과 함께 TH17을 자극하여, 염증 반응을 유발함으로써 원발 경화성 담관염(primary sclerosing cholangitis, PSC)을 일으킨다. 장내 미생물의 전위와 면역 매개성 질환의 상관관계는 최근에 전신홍반루푸스(systemic lupus erythematosus, SLE) 환자들과 자가면역 간염(autoimmune hepatitis) 환자들을 바탕으로 진행된 생체 조직 검사에서 엔테로코커스 갈리나럼의 DNA가 검출됨에 따라 이러한 사실이 다시 한 번 입증되었다.
이와 같은 결과들은 간, MLN, 비장 등 장 관련 기관들이 장내 미생물총에 의한 자가면역에 취약하며, 이 기관에서 발생하는 자가면역은 전신성 자가면역 질환(systemic autoimmune disease)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숙주와 장내 미생물총 사이의 상호작용은 장-간 축(gut-lung axis)뿐만 아니라 신경계(nervous system)와 같은 기관계에서도 작용한다. 뇌는 앞서 언급한 기관들에 비해 장으로부터 비교적 멀리 위치하며, 위장관과는 달리 외배엽(ectoderm)에서 발생하지만, 이 기관 또한 장내 미생물총의 영향을 받는다.
뇌의 경우, 아직까지 장내 미생물총의 전위가 관찰된 바 없으며, 혈액뇌관문(blood-brain barrier, BBB)으로 인해 장내 미생물총의 전위가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으나, 장내 미생물들이 생산하는 물질들이 장-뇌 축(gut-brain axis)을 통해 중추 신경계(central nervous system, CNS)를 자극하여 숙주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부를 포함한 대부분의 장기들의 표면에서도 고유의 미생물총이 발견된다. 대표적인 예가 스타필로코커스 에피더미디스(Staphylococcus epidermidis)로 이 균주는 황색도도상구균(Staphylococcus aureus)과 같은 병원균이 피부에 정착하는 것을 방지한다. 장내 미생물총과 마찬가지로 피부 미생물총의 불균형 또한 다양한 경로를 통해 국소 또는 전신 면역 반응을 과도하게 활성화시킴으로써, 피부 관련 자가 면역 질환을 일으킨다.
아토피 피부염(atopic dermatitis)의 경우에는 피부 미생물총과 T 세포 사이의 상호작용에 의해 발생한다. 사람을 비롯한 모든 동물들은 출생 시 피부에 존재하는 공생균에 노출되면서, Tregs는 이들에 대한 면역 관용을 획득하며, 기억 T 세포(memory T cell) 및 효과 T 세포(effector T cell)가 생성된다.
이러한 T 세포들의 기능 상실은 제2형 도움 T 세포(type 2 helper T cell, TH2)에 의한 상처 치유 경로를 지속적으로 활성화시켜 아토피성 피부 염증 질환들을 일으킨다.
SLE, 쇼그렌 증후군(Sjogren’s syndrome)과 같은 자가면역질환의 경우에는 피부 미생물총에 의한 항원 교차 반응성(antigen cross-reactivity)에 의해 발생한다. 이 질환을 앓고 있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공생균이 생산하는 Ro60의 동일 조상 단백질(orthologue)에 대한 항체를 가지고 있으며, 항-Ro60-양성(anti-Ro60 positive) 루푸스 환자의 혈청을 공생균의 Ro60 리보핵산단백질(ribonucleoprotein)과 반응시키면 면역침전(immunoprecipitation)이 일어난다.
추가적으로, Ro60 생산 장내 미생물들을 무균 쥐(germ free mouse)에 이식하였을 때, 면역 복합체 침착(immune complex deposition)으로 인한 신장염(nephritis)이 발생하는 현상이 관찰된 바 있다.
장-피부 축(gut-skin axis)은 미생물총이 피부 자가면역을 일으키는 또 하나의 경로로 이러한 기작을 통해 일어나는 대표적인 피부 질환으로는 백반증(vitiligo)이 있다. 이 질환은 T 세포에 의한 자가면역 질환으로 피부 멜라닌 세포(melanocyte)의 손상에 의해 일어난다. 암피실린(ampicillin)의 복용과 백반증의 상관관계를 증명하는 실험 결과가 보고된 바 있으며, 아직까지 정확한 기작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암피실린에 의한 장내 미생물총의 구성에 변화가 백반증을 야기한다고 생각되고 있다.
인체에 서식하는 특정 미생물들은 병원균 감염 또는 조직 손상이 일어나는 경우, T 세포의 분화를 촉진하여 TH1, TH17, 여포 보조 T 세포(T follicular helper), 세포 독성 CD8+ T 세포(cytotoxic CD8+ T cell) 등 염증 반응을 유도하는 T 세포들을 과량으로 생산함으로써 보조 T 세포의 편향화를 통해 면역 매개성 질환을 일으킨다. 동일한 공생균이라 할지라도 숙주의 면역 상태에 따라 보조 T 세포의 분화에 다르게 작용한다. 예를 들어, 면역 항상성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아커만시아 뮤시니필라(Akkermansia muciniphila)는 여포 보조 T 세포의 생성을 촉진하는 반면, 염증 상황에서는 TH17의 생성을 촉진한다. 또한, 장내 미생물과 병원균은 보조 T 세포가 분비하는 사이토카인의 종류에도 영향을 줌으로써 염증 반응에 기여한다. 예를 들어, 절편섬유상세균(segmented filamentous bacteria, SFB)는 비염증성 사이토카인인 IL-10+을 분비를 촉진하는 반면, 시트로박터 로텐티움(Citrobacter rodentium)은 염증성 사이토카인인 인터페론-γ(interferon-γ)은 생산을 촉진한다.
치료법
개개인의 유전자 배경에 따라 숙주-미생물총 사이의 상관관계의 복잡성이 다르기 때문에 면역 매개성 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미생물총을 표적으로 하는 치료제는 맞춤형으로 제작된다. 이와 같은 맞춤형 치료법은 면역 매개성 질환 환자의 유전자 지도(genetic map)와 미생물총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제작된다. 현재 이러한 치료법의 효능을 더욱 증대시키기 위해 항염증 효과를 가진 미생물총의 대사물질들을 발견하는 작업과 염증 유발성 기회병원성 공생미생물을 억제하는 방법들이 연구 중에 있다.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백신들의 표적 물질들이 기회병원성 공생미생물과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므로 백신을 사용함으로써 기회병원성 공생미생물을 효율적으로 제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엔테로코러스 갈리나럼의 전위를 예방하는 목적으로 사용한 백신을 통해 안정성, 지속성, 효과성이 입증된 바 있으며, 따라서 백신은 면역 매개성 질환 완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백신을 이용한 기회병원성 병원미생물의 제거가 숙주 세포에 부수적인 영향을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이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들이 필요하다.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는 바이러스체(virome)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바이러스로 천연 파지(natural phage)와 합성 파지(synthetic phage) 모두 면역 매개성 질환을 악화시키는 기회병원성 공생미생물을 특이적으로 제거한다. 최근 진행된 동물 실험에서 파지를 이용하여 알코올성 간 질환(alcoholic liver disease)을 일으키는 기회병원성 공생미생물들을 특이적으로 제거하는데 성공하였으며, 현재 바이오산업에서는 IBD 발병과 관련된 클렙시엘라 뉴모니아를 표적으로 하는 파지 개발이 진행 중에 있다. 균주-특이적 파지 치료법은 기회병원성 공생미생물들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는 면역 매개성 질환들의 치료에 있어서 효과적이다. 백신과 마찬가지로 파지 치료법 또한 숙주의 건강에 기여하는 이로운 균주들도 같이 제거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지만, 이 두 방법 모두 기존에 사용하는 항생제에 비해 특이성이 높다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면역 매개성 질환을 치료하고자 하는 환자들에게 있어서 식습관은 희망적인 치료법이다. 식단은 엄격하게 규제된 상황 속에서 장내 미생물의 불균형을 회복시키며, 기회병원성 공생미생물의 성장을 억제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하였듯이 사람마다 보유하고 있는 유전자 배경과 미생물총의 구성의 차이로 인해 음식물이 개개인에 미치는 영향은 다르며, 음식물 자체가 미생물총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나도 방대하기 때문에 맞춤형 식단을 개발에 앞서 수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